필자 정광일 제8회 공인노무사 시험 합격(1999) (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현) 플러스 티 에이아이 / 프리랜서 백신 대표
노무를 제공하면 일단 근로자로 보고, ‘근로자가 아님’을 사업주가 증명하도록 입증책임을 통째로 뒤집는 ‘근로자추정제’가 입법 단계에 들어섰다. 지휘·감독, 근무시간·장소 구속, 보수의 근로 대가성, 계속성·전속성 등 4개 지표 중 하나만 입증되면 근로자로 추정되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입증을 사용자가 4개 지표를 모두 반증해야 한다.
택배·배달·대리운전기사,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 캐디 등 약 870만 명의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가 직접 영향권에 들며, 4대보험·최저임금·산재·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가 업종별로 크게 달라진다.
1.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 입증책임의 ‘전환’
근로자추정제의 핵심은 ‘누가 증명하느냐’의 전환이다.
지금까지는 노무를 제공한 사람이 “나는 근로자다”라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종속성, 지휘·감독, 보수의 성격 등을 본인이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기준법 보호 밖에 머물렀다. 플랫폼 종사자에게 이 구조는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배차하고 단가를 정하는지, 회사 내부 데이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개인이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근로자추정제는 이 출발점을 정반대로 바꾼다. 근로기준법에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노무제공자)은 분쟁 해결에서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은 노무를 받는 쪽(사업주)이 증명하도록 책임을 넘긴다. 한국노동법학회와 고용노동부가 2026년 2월 공동 토론회에서 제시한 개정안(권오성 연세대 교수 발제)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제198호를 참조해 판단 지표를 법에 명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근로자로 ‘추정’되는 지표 (하나만 입증돼도 근로자 추정)
1)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은 사실 2) 상대방이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노무제공자가 이에 구속된 사실 3) 지급된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가’ 성격을 갖는 사실 4) 노무제공관계가 계속성을 가지며 상대방에 대한 전속성이 인정되는 사실
추정을 뒤집으려면 사용자가 다음을 ‘모두’ 입증해야 한다
1) 지휘·감독 없이 업무 방법·시간을 노무제공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는 점 2) 상대방의 통상 사업 범위 밖 업무이거나 그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지 않는다는 점 3) 같은 분야에서 본인 이름과 계산으로 독립한 사업에 종사한다는 점 4) 이윤 창출과 손실 등 위험을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부담한다는 점
발제자는 “근로자성 판단의 실체 기준을 바꾸거나 새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판단을 시작하는 출발점을 ‘근로자가 아니다’에서 ‘근로자다’로 바꾸는 판단구조의 재설계”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은 이 제도를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과 패키지로 묶어 2026년 노동절(5월 1일)을 목표로 추진해 왔고, 6월 현재 다수 법안이 발의돼 국회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 지금과 무엇이 달라지나 — 업종별 영향
같은 제도라도 업종마다 충격의 결이 다르다. 종속성 지표가 ‘이미 강한’ 직군은 빠르게 근로자로 편입되고, 지표가 ‘애매한’ 직군일수록 분쟁 소지가 커진다.
1) 배달·택배·대리운전 (플랫폼 운송)
가장 직접적인 영향권이다. 앱이 배차·동선·단가를 통제하는 구조는 ‘지휘·감독’과 ‘근무 구속’ 지표에 정면으로 걸린다. 근로자로 추정되면 4대보험, 산재, 최저임금, 휴게·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될 수 있고,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 대상으로 들어온다. 라이더 사고가 ‘업무상 재해’이자 ‘중대산업재해’로 다뤄질 여지가 커진다는 의미다. 반대로 플랫폼 기업은 비용 급증을 이유로 배차 알고리즘과 계약 형태를 손볼 유인이 생긴다.
2)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 캐디 (전통적 특수고용)
오랜 근로자성 분쟁의 당사자들이다. 전속성과 계속성이 비교적 뚜렷해 추정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위탁판매·도급 형식의 보수 구조가 ‘근로 대가성’ 판단에서 다툼의 핵심이 된다. 근로자로 인정되면 퇴직금·연차·해고 제한이 적용돼 위촉·해촉 관행 자체가 흔들린다.
3) 건설·하도급 현장
일용·재하도급 구조에서 ‘실질 사용자’가 누구인지가 쟁점이다. 근로자 추정이 강화되면 원·하청 책임 구분이 더 첨예해지고, 사망사고 시 산재 인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둘러싼 책임 주체 판단이 근로자 쪽에 유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4) IT·디자인·콘텐츠 프리랜서
재택·자율 작업이 많아 ‘업무 방법·시간 자율 결정’ 반증이 상대적으로 쉬운 영역이다. 다만 특정 발주처에 사실상 상주하거나 전속으로 일하는 ‘가짜 3.3’ 형태는 추정 대상에 포섭될 수 있다. 진짜 독립 사업자와 위장 프리랜서를 가르는 경계가 분명해지는 셈이다.
달라지는 핵심은 ‘리스크의 이동’이다. 과거에는 개인이 소송으로 근로자성을 다투는 부담을 졌다면, 이제는 사업주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는 데 따른 비용·법적 위험을 지게 된다. 보호 대상이 158만~455만 명(종속성 지표 적용 방식에 따른 추산)에서 정부 추계 870만 명까지 폭넓게 거론되는 이유도 이 지표 설계의 민감성 때문이다.
3. 향후 전망 — 보호의 확대와 ‘역설’ 사이
제도의 방향은 분명하다. ‘권리 밖 노동’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흐름은 노란봉투법, 일하는사람기본법과 맞물려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보호의 역설’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4대보험료와 최저임금, 산재 부담이 늘면 플랫폼·중소사업자가 계약을 축소하거나 인력을 줄여 오히려 종사자의 실수령액과 일감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은 인건비 부담에 따른 폐업 위기를, 일부 현장 종사자는 ‘자유로운 일하기’가 제약되는 것을 우려한다. 노동계가 찬성하는 반면 경영계와 일부 당사자가 신중론을 펴는 지점이다.
따라서 입법의 승부처는 지표의 ‘디테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지표를 어느 강도로 명시하느냐에 따라 보호 대상이 수백만 명 단위로 출렁이기 때문이다. 통계 기반이 부실하다는 비판, 산재·중대재해 적용 범위를 어디까지 확장할지에 대한 조율, 플랫폼 산업의 비용 구조 변화 등이 핵심 쟁점으로 남는다. 기업으로서는 ▲현행 계약·지휘체계 점검 ▲보수 산정 방식의 근로 대가성 여부 검토 ▲산업안전 책임 범위 재정비를 선제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주요 Q&A
Q1. 프리랜서면 무조건 근로자가 되는 건가요? 아닙니다. ‘추정’입니다. 노무 제공 사실이 확인되면 일단 근로자로 보지만, 사업주가 자율성·독립성·위험 부담 등 4개 지표를 모두 입증하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2. 근로자로 추정되면 어떤 권리가 생기나요?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면 최저임금, 퇴직금, 연차, 근로시간·휴게 규정, 부당해고 제한 등이 따라옵니다. 더불어 4대보험 가입, 산재보상, 그리고 사업장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Q3. 산업안전·중대재해와는 어떻게 연결되나요? 근로자성이 인정되면 그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다뤄질 여지가 커지고,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산업재해’ 책임 논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라이더·캐디 등 그동안 사각지대였던 직군의 안전 책임 주체가 분명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Q4. ‘가짜 3.3’ 계약도 잡히나요? 형식은 사업소득(3.3%) 프리랜서지만 실질은 종속 노동인 경우가 핵심 타깃입니다. 특정 발주처에 전속·상주하며 지휘를 받는 형태라면 추정 지표에 걸려 근로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5. 언제부터 시행되나요? 정부는 2026년 노동절(5월 1일)을 입법 목표로 추진해 왔으나, 6월 현재 국회에서 다수 법안이 발의돼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지표의 구체적 설계를 둘러싼 노·사 이견이 남아 있어 최종 시행 시점과 적용 범위는 입법 과정에서 더 다듬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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